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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지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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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지구대 안내

오수지구대

안녕하세요. 오수지구대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의견의 고장이라 불리는 임실군의 오수면, 박사의 고장 삼계면, 충효의 고장 성수면, 지사면을 관할하는 오수지구대장입니다.저희 오수지구대는 “열린마음으로 주민과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자”는 캐치플래이를 내걸고 언제나 주민들의 편에 서서 일할 것이며, 지역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우리 지역의 치안을 확보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주민여러분의 고견과 관심을 부탁드리며 가정에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오수 지구대장  
관내현황
일반현황표
면적 인구 관할행정구역
40.5㎢ 4,176명 4개면(오수,지사,성수,삼계)
주소
  • 전북 임실군 오수면 충효로 2095-11
지역특성
  • 전주-남원간 17번국도(15km)와 순창-장수간 13번국도(19km)
  • 임실-진안간 30번국도(10km)가 동서,남북으로 교차함
  • 오수의견제, 성수산 휴양림, 삼계 세심휴양림등 관광지
  • 오수의견공원, 애견센타(추진중)등 애견관광산업
중점 지역경찰활동
  • 역동적 경찰활동 전개
    - 취약지역(24:00~06:00)강/절도 예방을 위한 방범활동 추진
  • 교통사망사고 줄이기 강력 추진
    - 교통사고 잦은지점 112순찰차 고정배치로 사고예방 주력
    - 보행자 사고예방 홍보활동, 이륜차 안전모 미착용 집중 단속
    - 농기계 사고 예방 활동 추진
  • 생활주변 불법, 무질서 행위 근절
    - 기초질서 위반사범 지도단속 강화(음주소란, 인근소란 등)
관광명소
  • 임실오수망루

    문화재명 : 임실오수망루
    지 정 별 : 등록문화재 제188호
    지정일자 : 2005. 06. 18
    소 재 지 :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348-6
    규모 : 건축면적 2.0㎡, 높이 12m, 하부직경 2.4m
    높이 12m의 임실 오수망루는 1940년경 세워져 주변지역의 산불감시 및 비상상황고지, 야간 통행금지를 알리는 수단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도심지역에 위치하여 이 지역의 랜드마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축조방식에 있어서 원형으로 된 망루위에 육각형의 망대를 두면서 생기게되는 6모의 구조적인 처리가 간결하면서 인상적으로 지역사적, 건축사적 가치가 크다
  • 삼계강사계안

    문화재명 : 삼계강사계안
    지 정 별 : 지방유형문화재 160호
    지정일자 : 1998. 01. 09
    소 재 지 :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584
    삼계강사(三溪講舍)는 효령대군의 증손인 춘성정(春城正) 이담손을 중심으로 조선 광해군10년(1618)에 강사를 창립하여 7개부락 7개성씨(이.김.한.최.하.장.양씨)등에 의해 인근 학도들을 교육하는 서재로 운영되었다. 삼계강사에 보관되어 있는 135개 서책과 95장의 고문서는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모습과 함께 혼례. 상례. 관례들을 알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오수리석불

    문화재명 : 오수리석불
    지 정 별 : 지방유형문화재 제86호
    지정일자 : 1977. 12. 31
    소 재 지 :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550
    오수면 관월부락 뒤에는 약 삼백년 전부터 석불이 우뚝서 마을의 수호신처럼 이 마을을 굽어보고 우뚝 서 있다. 한 아낙네가 어느날 뒤쪽산을 바라보니 큰 집채만한 바위덩어리가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저것좀 보라고 큰소리를 치니 이 아낙네가 외치는 소리를 들은 바위가 그만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서버렸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가 석불인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서로 불공을 드리고 관리에 정성을 쏟아오고 있는데 석불이 마을 뒤 산 쪽에 안좌하지 않고 마을앞까지 나와 안좌(정좌)했더라면 이 마을이 더욱 융성하고 자손이 오래도록 부귀영화를 누렸을 것이라 전한다. 그후 1백년이나 눈, 비, 바람을 맞고 외로이 서있는 석불을 이 마을 최경태씨가 움막 같은 집을 만들어 주었으며 다시 약 80년전 진안 마이산에 거주하는 고 이갑용처사가 꿈에 이 석불이 나타나 「내가 옷을 벗고 있으니 집을 지어 달라」는 부탁을 하므로 다시 개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오수의견공원
    의견비

    문화재명 : 오수의견공원 / 의견비
    지 정 별 : 등록문화재 제188호
    지정일자 : 2005. 06. 18
    소 재 지 :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332
    오수의 지명이 전해주듯 이곳은 충심있는 개의 이야기로 유명하고 이 이야기는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이다. 본래 오수 의견비 이야기는 구전으로 내려와 심병국씨가 유래를 찾았다. 언론인 백남혁씨가 고려 악부의 견문곡과 보한비의 의견비에서 나타난 이야기가 바로 오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으로 알아내고 가람 이병기 박사로부터 고증을 받음으로써 이 마을 이「보은(報恩)의 개」마을이었음이 밝혀졌다. 지금도 오수리 시장내 원동산 공원에는 의견비가 서있어 주인을 위해 죽어간 개의 충절을 위로하고 있다. 지금부터 1천년전 고려시대 거령현, 오늘날의 지사면 영천리에 김개인(金蓋仁)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개를 몹시 사랑하였으며 어디를 다닐 때면 항상 데리고 다녔다. 먹을때도 같이 먹고 그림자처럼 함께 다니면서 생활하였고 그 개 역시 그를 충성으로 따랐다. 그러던 어느해 이른봄 그는 개를 데리고 장이 선 오수로 놀러 나갔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술을 좋아하여 친구들과 한잔두잔 기울이다가 그만 날이 저물어 버렸다.

    그는 몹시 취한 채 집으로 가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여 그만 잔디밭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개는 주인이 잠에서 깨어나기만 기다리며 쪼그리고 않아 주위를 살피면서 지키고 있었다. 때마침 부근에서 들불이 일어나 부근에 번지고 있었다. 개는 주인을 입으로 물고 밀면서 깨우려고 온갖 지혜를 다 짜냈다. 그러나 술에 골아 떨어진 주인은 주위의 불길도 아랑곳없이 깨어날 줄 모르고 있었다. 뜨거운 불길이 점점 주인의 옆에까지 번져오자 개는 불을 끌 수 없음을 깨닫고 가까운 냇물로 쏜살같이 달려가 온몸에 물을 흠뻑 묻혀와 잔디를 적시기 시작했다. 수십수백번을 이렇게 왔다갔다하여 잔디는 물에 젖고 싸늘함을 느낀 주인은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힘이 쑥 빠진 개는 주인의 옆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주위를 둘러본 후 사건의 전말을 알게된 김개인은 ,몸을 바쳐 자기를 구해준 개를 부여안고 크게 원통해 하였다. 주인은 개를 장사지낸 뒤 이곳을 잊지 않기 위해 개의 무덤 앞에 평소 자기가 지니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두고 그 자리를 떠났다. 얼마후 지팡이에 싹이 돋기 시작하더니 하늘을 찌를 듯한 느티나무가 됐고 그 때부터 그 나무를 오수라 하였고 그것이 이 고장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그 개의 충성심을 길이 기리기 위해 건립했던 의견비는 문자마저 마멸돼버려 1955년에 다시 세웠고 이 뜻을 전국에 알리기 위해 면의 명칭도 둔남면에서 오수면으로 1992년 8월 10일 바뀌게 되었다. 1994년 4월 3일 춘향도로 국도변에 김개인과 의견상을 건립하였다
  • 이웅재고가

    문화재명 : 이웅재고가
    지 정 별 : 지방민속 자료 12호
    지정일자 : 1977. 12. 31
    소 재 지 :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456-1
    이 집은 현 소유자의 16대 선조이며, 마을의 향조이기도 한 춘성전(1490년생)이 지은 것이라고 전하나 건물 자체는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대지는 거의 장방형(44×41.2cm)을 이루고 있으며, 북에서 남으로 비탈져 있어서 군데군데에 축대를 동남향으로 앉았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동서 양측에 날기를 달아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이 집에서는 큰방의 동측에 머리방 대신 도장을 설치하고 도장 남측에 마루를 두고 이어서 머리방을 두었다. 서측 날개에도 색방을 따로 두고 있어서 상부는 공루이고 하부는 아궁이를 둔 공간을 배치하였다. 큰방 서측에는 찬방을 두어 부엌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안채 전면에는 ㄷ자형의 안 행랑채가 날개를 벌려 안채를 감싸고 있다. 이는 방아실, 안변소, 안광, 책방 등으로 구성되었다. 안 행랑채 동측에 일자형으로 선 사랑채의 지붕은 맛배지붕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각각 2칸씩의 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규모이며 상량문에 의하면 1864년에 세워졌다. 출입문은 중앙부 한곳에만 두고 좌우에는 채광을 위한 창을 달았을 뿐이다. 대문채는 5칸 규모이며 중앙부에 소슬대문을 두었다. 여기에는 「有明朝 孝子贈 通政大夫 吏曹參議 李文胄之閭」라고 쓰여진 정문 현판이 걸려있다. 이 현판은 1870년에 내려진 것으로 문간채도 이 무렵에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대문의 한쪽 남측에는 바깥변소가 별도로 세워졌으며 전면 우측에는 하마석이 있다.
  • 해월암

    문화재명 : 해월암
    지 정 별 : 문화재 자료 24호
    지정일자 : 1975. 02. 26
    소 재 지 : 임실군 오수면 대명리 725
    고려말 1352경 오수면에 해경대사와 월산대사가 창건하였다 하여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해월암이라 이름하였다. 본전은 ㄱ자형의 팔각 우진각건물이고 산신각은 정면 측면 각각 1칸의 맛배지붕의 건물이다. 1556년(명종 11년)7월 20일 남원부사가 중건했고 1747년(영조 23년) 5월 15일에는 거사 양정봉이 중수하고 다시 1858년(철종 9년)과 1915년에 중수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무가 우거져 신포정과 잇고 있어 이른봄의 상춘객과 여름의 피서 인파가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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