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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파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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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파출소 안내

신평파출소

안녕하세요. 신평파출소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임실경찰서 신평파출소장 입니다. 저희 지역치안에 관하여 궁금하신 사항이나 불편한점등 필요하신 사항은 언제든지 찾아주시기 바라며 많은 지원부탁드립니다.
신평 파출소장  
관내현황
일반현황표
면적 인구 관할 행정구역
33.70㎢ 1,752명 2개면(신평,운암)
주소
  • 전북 임실군 신평면 가덕로 665
지역특성
  • 롯데우유, 농공단지, 6탄약창이 있음
  • 오원천이 흐르고 있어 여름철에 익사 사고가 우려되어 예방순찰이 요구됨
관광명소
  • 임실용암리석등

    문화재명 : 임실용암리석등
    지 정 별 : 보물 267호
    지정일자 : 1943. 12. 30
    소 재 지 : 임실군 신평면 용암리 188-1
    재료 : 화강암
    시대 : 통일신라
    우리나라의 석등으로는 가장 큰 것의 하나이며, 아깝게도 상륜부(相輪部)가 없어졌다. 8각의 지대석 위에 놓인 하대는 2매석으로 되었으며 8각하대의 각 측면에는 가늘고 길쭉한 안상(眼象)을 새기고 상하에는 굽을 둘렀다. 이 위에 올려진 연화대석 위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으며 8판씩 조각하였는데 그 끝에는 큼직한 귀꽃을달아 장식하였다. 간주석은 원주형으로 중앙에는 북모양으로 배가 부른 양각대가 있고 상, 하단의 주위에는 복엽8판의 양,복면을 대칭이 되도록 조각하였다.

    상대석에는 낮고 높은 2단의 원형괴임이 조출(彫出)되고 측면에는 단엽8판의 암연이 새겨져있다. 화사석(火舍石)은 8면에 모두 장방형의 화창을 내었다. 옥개석은 하면에 3단의 낮은 괴임츨 각출하였고 추녀의 낙수흠도 각이낮다. 전각 끝에는 삼선형의 큼직한 귀꽃을 세워 놓았고 웅장하면서도 경쾌한 모습을 모이고 있다. 낙수면의 각 합각은 뚜렷하며 상부에 복연을 놓아 상륜부를 받도록 하였다. 옥개석 정상에는 현제 8각의 노반과 암화석만이 남아 있으나 원래는 보개(寶蓋)와 보주(寶珠)등 여러 가지 상륜부재가 있었을 것이다. 이 석등은 조각된 문양이 섬세하고 다양하며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석등이 있는 중기사는 건립연대가 확실치는 않지만, 신라중엽에 창건되었다하며 번성했을 당시에는 수도승이 천여명을 헤아렸다고 전한다. 중기사 본당 앞 50여m 전방에 세워진 석등의 규모로 미루어 이곳에 거대한 절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중기사가 폐허로 변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일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지승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절 앞에 흐른는 섬진강이 엄청난 홍수로 범람하는 바람에 사찰은 물론 승려 모두가 홍수에 휩쓸린 후 폐허로 변했다고 한다. 현존하는 중기사는 1924년에 당시 주지 박봉주씨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당은 정면4칸, 측면2칸의 함석지붕으로 이루어져 요사(療舍)를 겸하고 있다. 본당 우측 동현으로 정면 2칸, 측면칸도 역시 함석지붕으로 이루어져 산신각(山神閣)이 세워져 있다. 법당의내부에는 좌불이 안치되어 있는데 석불의 몸체에 흰 페인트칠을해 예술적인 가치를 크게 훼손시켰다. 중기사에 보존된문화재로서 잘알려진 것은 연화좌대이다. 이 좌대는 1924년 중기사를 재건할 당시 현 중기사의 서쪽 50m 지점에 위치한 광명제에서 출토 되었다 하며 지방유형문화재 제 82호로 지정되어 있다. 제작연대는 혹실하지 않으나 문양등의 규모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의 유물로 추정된다.

    중기사법당의 앞뜰에는 중기사 주위에 널려져 있던 옥개석 3장과 탑신, 노반을 모아 편리한 상태로 쌓아놓은 탑이있다. 이들 옥개석과 옥석받침 등은 대단히 정교하게 다듬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바로 이곳에 13층 탑이 있었다고 하나 확실한 것은 발굴을 통해 묻혀있는 기단부를 조사해야 알수 있을 것이다. 1992년 실시된 용암사지 1차발굴을 통해 이미 지정된 문화재 석등이나 연화좌대 이외에 귀면암, 암악새 등 185점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 임실용암리사지석조비로자나불상

    문화재명 : 임실용암리사지석조비로자나불상
    지 정 별 : 지방유형문화재 82호
    지정일자 : 1977. 12. 31
    소 재 지 : 임실군 신평면 용암리 76-1
    중기사지 임실용암리사지석조비로자나불상는 신평면 용암리 소재 서쪽 약 30m지점에서 출토됐으며 지방유형문화재 제 8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좌대는 2기가 있는데, 1기튼 상대, 중대, 하대석 모두 팔각으로 중대안상(中臺眼象)에 합장한 좌상이 조각되어 있고 하대 역시 각 면마다 문양이 조각되어 있으나 문양을 판별할 수 없고 다른1기는 상대가 반구형으로 판내의 화문이 중판연화문(重辦蓮花文)의 양연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중대는 판각으로 되어 있으나 각면의 경계가 불분명하며 4면에는 석등화창같이 장방형으로 되어져있다. 문양 등 규모로 보아 2기의 상대석이 서로 바뀌어 놓여진 것으로 보이며 이 지역에 위치한 보물 제 267호 석등과 더불어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추정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신라중엽에 창건된 중기사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됐으며, 이 좌대는 광명제 옆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24년 당시의 주지 박봉주가 현 중기사를 재건하며 좌대를 옮겨 현 불상을 봉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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