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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치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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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치안센터 안내

삼계치안센터

안녕하세요. 삼계치안센터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임실경찰서 삼계치안센터장입니다. 삼계치안센터를 방문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참여정부의 경찰로 우리 삼계 지역주민들에게 질서와 친절한 봉사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지역 치안을 주민과 함께하는 치안으로 한층 더 발전시켜 편안한 지역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여러분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수지구대 삼계치안센터 민원담당관  
관내현황
일반현황표
면적 인구 관할구역
54.8㎢ 1,671명 삼계면
주소
  • 전북 임실군 삼계면 충효로 1286
관광명소
  • 광제정

    문화재명 : 광제정
    지정별 : 문화재자료 130호
    지정일자 : 1990. 06. 30
    소재지 : 임실군 삼계면 세심리 252-1
    약 200년 전에 매당 양돈(楊敦) 선생이 지었다. 선생은 생원.진사를 지내다가 연산군 무오사화를 피해 아산방(현제.봉현리)에서 은거하였는데 문장과 덕행이 뛰어났다. 선생은 남효온(호.秋江)공의 천거로 조정에서 불렀으나 이를 마다하고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선생이 별세하자 양민들이 추모하여 아계사(阿溪祠)를 짓고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노동환 가옥

    문화재명 : 노동환 가옥
    지정별 : 문화재자료 118호
    지정일자 : 1986. 09. 08
    소재지 : 임실군 삼계면 후천리 465
    마을이 형성될 당시 진(陳)씨들이 현 건물 뒤 대나무 밭에 이 건물을 지어 6∼7대를 이어 오다가 양(梁)씨들이 3∼4대를 살았다 한다. 건물주(노동환)의 8대조 오류처사공이 건물을 구입 신축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건물의 터가 제비알을 품은 형태이고 집을 바라보고 있는 원산(강정등)이 사두혈이라하여 이 집을 넘어다보기 때문에 거부나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 하여 사두를 눌러 꼼짝 못하게 하기 위하여 산머리에 강정이란 정각을 지었다 한다. 1650년에 건축된 것으로 보이며 안채, 행랑채,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20.64평이다. 서쪽으로부터 앞쪽에 부엌이 있고 뒤쪽으로 방이 둘 있다. 안방 다음으로 대청마루, 그 다음 건넌방이 있고 뒷쪽으로 도장이 있다. 주초는 4각형 자연석을 썼으며 기둥은 방주로 굵기가 25×25cm이다. 댓돌은 자연석으로 3개가 있다.

    행랑채는 외양간, 헛간, 변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옛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원래는 초가집이었으나 기와로 바뀌었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인 팔작지붕으로 건평 14.29평의 ㅗ자형 건물이다. 사랑채와 문간채가 붙어 있는 형식으로 대문 좌우에 문간방이 있었으나 현재는 없다. 문간방 아래쪽으로 청지기방이 있고 그 옆으로 사랑방이 있다.
  • 만취정

    문화재명 : 만취정
    지정별 : 지방유형문화재 제106호
    지정일자 : 1983. 08. 24
    소재지 : 임실군 삼계면 신수리 234
    만취정은 김위(金偉,1532∼1595)가 조선 선조5년(1572)에 세운 건물로 순조14년(1814)에 고친 것이다. 김위는 지방관으로 재직할 때마다 선정(善政)을 베푼 사람으로 유명하며, 경상도 합천 등지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선정비(善政碑)가 남아 있다. 만취란 겨울에도 변하지 않는 초목(草木)의 푸른빛이라는 뜻으로 김위의 인품을 상징하는 듯하다. 만취라는 정자의 이름은 선조 13년(1580)에 우리나라를 찾은 명나라 사람 서계신(徐繼申)이 지어 주었고, 글씨는 선조의 친필이라는 얘기가 전한다. 정철(鄭澈),기대승(奇大升), 임제(林悌)등 대학자들과 김위가 술잔을 기울이며 주고 받던 시가 담긴 상호헌시판(相互獻詩板)이 정자 내에 걸려 있다
  • 오괴정(五槐亭)

    문화재명 : 오괴정(五槐亭)
    지정별 : 문화재자료 167호
    지정일자 : 2000. 11. 17
    소재지 : 임실군 삼계면 삼은리 산49
    임실군 삼계면 삼은리 산49번지에 소재한 오괴정〔해주 오씨 판사공파 돈암동(휘양손)종중 소유〕이 전북특별자치도 지정 문화재 자료 제167호로 지정 되었음. 오괴정은 뢰계리(磊溪里)에 세거(世居)한 해주오씨 입향조(入鄕祖)인 돈암(遯庵) 오양손(吳梁孫) 이 지은 정자(亭子)이다. 그는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의 문인으로 벼슬은 참봉이었다.

    1519년(중종14년)에 을묘사화가 일어나서 정암(靜庵) 趙光祖등 많은 어진선비가 화를 입은 것을 보고 그는 처음에는 수원으로 돈적(遯跡)하였다가 다시 1521년(중종16년)에 남원 말천방( 川坊) 목기촌으로 터를 잡아 옮겼왔다. 그가 이마을에 들어와서 은거하면서 정자를 짓고 그옆에 다섯그루의 괴목(槐木)을 심어 정호(亭 號)를 오괴라 이름하였다. 이것은 옛날 중국의 왕진(王晉)이 세그루의 괴목을 심은 고사를 본딴 것이다.

    그 후로 이 정자는 그의 후손이나 이웃의 사림들이 모여 향음례(鄕飮禮)를 행하기로 하였고 또는 강(講)을 설(設)하여 글을 읽고 詩를 짓기도한 장소로 쓰여 오다가 화재로 소각되었다.

    그러다가 후손들이 다시 중건을 하고 그 중건기(重建記)를 동강(東江)김녕한(金 漢)에게 1922년 에 받아서 이 정자에 걸었다.

    - 건립연대 : 1545년, 중건 1922년 - 구조 : 팔작지붕, 겹처마 - 규모 : 정면 3칸, 측면 2칸
  • 학정리 석불

    문화재명 : 학정리 석불
    지정별 : 지방유형문화재 제87호
    지정일자 : 1997. 12. 31
    소재지 : 임실군 삼계면 학정리 285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불상은, 받침대 등 하반신이 아직 땅에 묻혀 있지만, 상체의 모습만으로도 상당한 규모임을 짐작할 수 있다. 큼직한 얼굴과 볼 아래까지 내려온 커다란 귀는 풍만하지만, 가는 눈과 작은 입은 다소 무거운 느낌을 준다. 머리는 6ㆍ25때 떨어진 것을 다시 붙인 것이다. 어느날 풀을 먹다가 달아난 소를 발견하고 화가 난 농부가 소에게 돌을 던졌으나, 잘못하여 석불의 코를 맞혀 석불의 코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농부는 그날부터 병을 앓다가 죽었는데, 주민들은 농부의 죽음을 석불이 내린 벌이라 생각하고, 석불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애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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